최근 캐나다의 동, 서해안에는 홍수와 폭풍으로 연일 난리다. 캐나다는 지난 달 동해안의 홍수로 가축들이 떠내려가 구조대가 동원되는 등 많은 피해가 속출하는데다, 여태 보기 힘들었던 눈도 밴쿠버 인근지역에 25cm나 내리고, 서해안은 폭풍으로 외출 자제 조치가 발효되는 등 '좌(左) 홍수, 우(右) 폭풍'으로 걱정 많은 한 달이었다.
백신 증명서란 있을 수 없다고 장담하더니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 갑자기 온타리오를 비롯한 많은 주가 백신 증명서 없이는 공직이나 공공기관 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가 내려진다. 금리 인상은 아마도 먼 훗날 일어날 일처럼 안심시키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인상될 것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부화뇌동(附和雷同) 하는 것도 같고, 이 전염병의 확산이 약해질 경우와 강해질 경우의 두 시나리오를 동시에 마련해 놓고, 상황에 따라 카드를 뒤집어 내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만큼 조변석개(朝變夕改)다. 오미크론이라는 변수가 해외 입국자로부터 유입되어 번지기 시작하여, 산전수전(山戰水戰)에 지치고 내우외환(內憂外患)에 한숨 짓는다.
백신을 신뢰하지 않는, 혹은 어떠한 이유로 백신 접종 받기를 거부하는 안티백서(anti-vaxxer)들의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공직이나 공기업, 교육, 의료계에서는 백신 미접종자의 고용을 유지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백신 미접종자가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게 여러 조치들이 내려져 있는 가운데, 온타리오 주 수상의 딸은 백신에 대한 회의론을 보이는 언행을 드러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집안의 불협화음도 사회와 국가의 만장일치로 정책이 수행되는 데에 온전히 협조하기가 쉽지 않다.
세계 각국이 부양정책을 편다고 가계와 기업에 현금 보조를 하다 보니 현금 보유량이 많아져 일반 시민들도 일자리 복귀에 관심이 없고, 조기 은퇴가 유행이라고 한다. 현금 가치가 떨어지니 현금을 보유만 하고 있으면 ‘벼락거지’가 된다고도 한다. 소비가 늘고 기업의 수익이 증가한다고 하다가,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물류 대란이라고도 한다.
경기 침체를 막자니 인플레가 우려되고, 급격한 물가 급상승을 막아 보자니 부채가 심각한 가계와 기업이 도산 위기에 처할까봐 신중해야 한다고 한다. 파산 직전의 가계와 기업이 평화를 유지하도록 부양을 해야 한다는 비둘기파와 발톱으로 움켜 쥐듯 긴축하여 인플레를 잡아야 한다는 매파의 공방은 지속되고 있고, 주식 시장은 황소의 뿔이 위를 향해 들이받는 형태가 한동안 지속되다, 이젠 곰이 위에서 아래로 후려치는 모양새도 보인다. 진퇴양난(進退兩難) 시대, 좌충우돌(左衝右突)의 ‘동물 농장 연대기(Chronicles of Animal Farm)’를 살아가는 것 같다.
오미크론이 더욱 확산시킨 불확실성 시대의 해법이란, 차근차근 자료를 수집하고 관계망을 구축하고 장기적인 예측과 계획, 시뮬레이션을 통한 약점 보완 등의 절차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마치 바로 어젯밤 즉각적으로 떠올린 해법인 듯,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임시 방편으로 보이기도 한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할 것 같은 기세다. 각자 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도 떠돈다. 모두가 양 극단인 것도 같고, '도 아니면 모'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양 극단을 잠재우려는 노력처럼 올해 10월 갖추어진 캐나다의 새 내각은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의 구성 작품처럼 절묘한 균형미의 극치를 보여주듯,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고른 분배를 보여준다. 주(Province)별, 남/녀 성별, 신임/재임, 소수 민족/원주민, 성 소수자 등 인구 비율에 맞춰 고르게 조직되어 있다.
평균대 위의 체조 선수처럼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와중에, 캐나다의 국적기인 에어 캐나다(Air Canada)의 CEO는 불어권인 퀘벡(Quebec)주의 몬트리올(Montreal)을 본부로 하고 있음에도 캐나다의 공식 언어인 불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고 지탄을 받기도 했다. 캐나다의 공식 언어가 영어와 불어 이중 언어이니, 당연히 불어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은 수장 자격이 없다는 다소 단호한 입장이 있는 반면, 항공사의 CEO라면 언어 능력보다 ‘뭣이 중헌디…’ 하는 실용주의적 의견도 있었다.
이래 저래 어수선하기만 한 가운데에서도, 12월이 찾아오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마음 따뜻하고 흥에 겨운 연말의 축제를 기대한다.
화려한 불빛이 아롱진 거리를 손잡고 걷는 가족과 친구들, 쌀쌀한 날씨에 찻집에 들어가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거리를 거닐며 마음에 드는 소품 가게, 옷가게를 들여다본다. 포근한 손뜨개 스웨터와 장갑, 모자의 감촉을 느껴보면 훈훈하다.
알록달록 색전구들이 반짝이는 눈 덮인 전나무 아래서 선물 꾸러미를 끌어안고, 눈을 지그시 감은 듯 뜬 듯 연주에 열중하는 버스커의 음악이 거리에 흘러 넘치는 광경을 바라보며, 연인과 감미로운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고 싶기도 하다.
지역 상인들의 수공예 상품들과 장인이라 소문난 솜씨 좋은 공예품들을 구경할 수도 있는 곳, 몇 걸음만 가면 미술품 전시와 춤도 감상할 수 있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몰입식 공연도 즐길 수 있는 곳….
딱 이런 분위기의 연말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 바로 재작년까지 크리스마스 마켓(Christmas Market)이라고 불리던 행사다. 하지만 작년, 해마다 있어 오던 연말의 포근하고 흥겨운 행사는 코로나라는 전파력 강한 게릴라식 공격에 의해 문을 걸어 잠그게 되었다.
일 년의 공백 이후 올해 부활한 그 행사는 약간의 모양새를 달리 한 채, 윈터 빌리지(Winter Village)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달고 있다.
이 개명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국가로서 특정 종교적 성향을 띄는 이름을 내세우는 행사 개최는 이미 전 국민을 끌어 모으는 힘을 잃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무색 무취의 ‘겨울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하는 것이다. 기사를 살펴봐도 개명의 이유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댓글에 달린 갑론을박(甲論乙駁) 캐나다인들의 견해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개명인 것 같다.
백신 증명서 지참과 함께 모임과 행사의 규모에 대해서도 규제하는 정부 정책에 발맞추어, 이전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행사 위주로 진행되던 것이, 올해는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단위별로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준수하며 즐기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겨울 마을’이라는 행사가 개최되는 곳은 또 다른 캐나다의 역사를 보여주는 국립 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이기도 하다. 이 복합단지는 완전성, 역사적 연계성과 심미적 우수함 측면에서 빅토리아 양식의 산업 디자인의 뛰어난 예시가 된다고 한다. (“complex is an outstanding example of Victorian industrial design in terms of integrity, historical association and aesthetic qualities.”)
1832년 황야의 풍차 방앗간으로 시작되어 세계 최대의 양조 단지로 성장해, 캐나다 최대 납세 기업이었다던 이곳의 옛 이름은 토론토의 양조장 단지(Toronto’s Distillery District)다. Gooderham & Worts 양조장으로 알려졌던 이곳의 47개 건물들을 개보수하여 분위기를 살린 이 지역은, 마차를 몰고 풍차 방앗간과 돛단배를 띄우던 옛 시절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해주는 복고적인 모습을 건물 외면에 잘 재현해 냈다고 평가받는다.
게다가 건물의 내부에 들어가면 과거와 현재, 빅토리아 양식과 21세기 창의적 디자인이 잘 버무려진 드라마틱한 퓨전을 느낄 수 있고, 결과적으로 국제적으로도 호평 받는 독창적이고 독특한 상점들이 어우러진 쇼핑, 스튜디오, 갤러리, 극장, 식당, 카페들이 즐비한 마을이 되었다.
단순한 산책 투어 코스도 있고, 옛 양조장의 이름에 걸맞도록 기획된 위스키 시음 투어도 있다.
옛스러운 빅토리아 양식의 양조 산업 단지를 배경으로 어우러지는 화려한 전구들의 명멸과 어우러지는 음악, 미술, 춤의 축제 분위기가 흘러 넘치는 쇼핑가,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양조장의 발효되는 술 냄새에 취할 것 같은 퓨전이 뒤섞인 이곳에, 불현듯 떠오르는 동양의 시구를 더하고 싶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출처] 박목월 나그네
코로나가 종식되기는 커녕, 구미호가 재주를 넘듯 새 모습으로 등장한 오미크론과 함께 신무기에 대한 새로운 대처 전략을 강구해야 하는, 미래에 대한 투명성이 흐릿해지고 불확실성이 더욱 확산되는 시기인 이 때 앞으로의 시대에 영화의 오버랩 장면처럼 부지불식(不知不識)중 우리에게 스며들게 될 변화는 어떤 것일까…
요즘 기업들이 한창 개발에 열중하는 가상 현실 메타버스 세상, 아니면 엔비디아가 구현하겠다고 외치는 옴니버스 세상에 아바타로 입장해 현실과 가상을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는 이벤트와 쇼핑을 즐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구름에 달 가듯 정처 없는 나그네 입장에서 상상해 본다.
글: 유수진(Yoo SooJin) 캐나다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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